영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활자로는 보여줄 수 있듯, 영상 또한 활자가 그려내지 못하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희뿌옇게 번져드는 세상의 빛. 붉은 번호표를 단 이들이 걸어가는 기나긴 통로는 왜 그리도 추워 보이던지. 비에 젖은 흙에서는 싸한 풀내음이 퍼지고 있겠지. 회색 복도가 영원처럼 계속되고 또 끝나도 그네들이 결코 밟을 수 없는 공간 속에서.
희미하게 새어드는 빛이 마치 저 벽 너머로부터 세상이 보내오는 마지막 시선처럼 복도를 따라 이어지고 있었지. 그가 곧 죽을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조용히, 안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