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으로 돌아온 리헬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메이드 안나였다. 몇 번인가 문을 걷어찼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상당히 불쾌한 얼굴로 나타난 그녀는, 그러나 돌아온 사람이 리헬이라는 것을 포함해 무엇부터 놀라야 할지 몰라하는 얼굴을 했다.
"도련님? 우산을 어디다 두고, 아니 그 애는 누구…,"
"손님방부터 좀 치워줘!"
기막혀하면서도 지시대로 움직이는 안나를 뒤쫓아 계단을 올랐다. 발치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은 아랑곳않고 복도를 가로지르면, 안나가 객실의 문을 열었다. 소녀를 침대에 눕힌 뒤 인기척에 돌아보니 앨번이 문가에 서 있었다.
"도련님, 우산을 잃어버리신 것 같군요."
그제서야 자신의 몰골을 자각한 리헬은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무어라 말하기 전에 앨번의 행동이 먼저였다.
"안나, 손님이 입으실 옷을 구해오도록. 도련님도 갈아입으실 옷을 준비해 왔으니 우선 옷부터 갈아입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고마워."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내려다보니 물에서 건져낸 고양이가 따로 없다. 직접 갈아입겠다며 앨번을 극구 뿌리쳤으나 지고 말았다. 커다란 타월로 물기를 털어내는 앨번의 손에 머리를 맡긴 채, 침대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리헬은 생각했다. 만일 아이가 눈을 뜨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기우였다. 달도 없이 캄캄한 밤에, 리헬은 소녀가 누워 있는 객실에서 뜬 눈으로 새벽을 맞이했다. 그는 밤이 흐르는 내내 소녀의 얼굴만을 들여다보았다. 길게 자란 속눈썹이 뺨 위로 황금빛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그림자가 움찔, 작게 떨렸을 때, 리헬은 환희와 긴장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황금빛 눈동자가. 실로 그림 같은 빛깔이었다. 소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좌우를 돌아보더니 리헬을 발견하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이윽고 작은 입술이 열리고 흘러나온 목소리가 지나치게 평범하게 느껴졌을 정도로, 시트를 움켜쥐는 작은 동작 하나조차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넌 누구야? 여긴 어디야?"
"나는.. 나는 리헬이고 여긴 우리집이야. 네가 길에 쓰러져 있어서 데려왔어."
리헬. 소녀가 발음을 따라하듯 리헬의 이름을 입 속에서 굴려 본다. 리헬은 진한 행복이 피 대신 심장을 채우는 것을 느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리헬. 네 이름은?"
"포에티."
포에티. 어떤 꽃의 이름보다도 아름답게 들린다. 자신이 지어보일 수 있는 가장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리헬은 소녀의 금발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소녀가 따라 웃었다. 어째서일까, 동시에 리헬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다.
다음날부터 리헬의 일과에 변화가 생겼다. 그는 포에티의 손을 잡고서 마을을 돌아다녔고 도시락을 싸들고 공원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그가 가는 곳에는 포에티도 반드시 동행했다. 이따금 전문 모델을 부르곤 하던 리헬은 일절 모델을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는 오로지 포에티만을 그렸다. 본래 표현은 서투르지만 타고난 성품이 다정한 그였다. 소녀는 처음에는 다소 경계하는 듯했으나 빠르게 마음을 열어갔다.
저택의 사용인들은 미소 띤 얼굴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다만 집사인 앨번만은 무표정한 얼굴 아래로 조금 복잡한 심경이었다.
"주인님께서 돌아오시면 저 아이의 처지도 곤란해질 테지."
아내인 안나는 그런 그를 향해 지나치게 이른 걱정이라고 일축해버리곤 했지만, 앨번이 옳았다. 수도 출장으로 장기간 저택을 비우고 있는 부친 노윈과 리헬의 충돌은 리헬이 아직 포에티만하던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리헬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고, 노윈은 리헬이 수도에서 대학을 마치고 자신의 사업을 잇기를 바랐다. 심약한 리헬이었지만 거기서만큼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사용인 입장에서야 아무래도 상관 없는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는 문제였지만, 개입할 문제도 아닌 것이 사실이었다. 실제로 포에티가 나타난 이후의 리헬은 전에 없이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는 하루에 한 번씩 포에티를 이끌고 미술관을 찾았다. 그녀는 미술 자체에는 별다른 흥미를 갖지 않았지만 리헬이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회라는 사실만으로 호감을 갖는 듯했다. 더군다나 던스트의 그림과 꼭 닮은 포에티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녀는 묘하게도 주목받는 것에 익숙한 듯이 행동했다. 그런 점마저 리헬로서는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더해주는 요소나 다름없었다.
어느 볕이 강하던 오후, 리헬은 눈부셔하는 포에티를 위해 양산을 샀다. 하얀 양산 위로 파랗게 펼쳐진 하늘, 순간 바람이 불어와 꿀을 부은 듯 흘러내린 눈부신 금발이 흩날렸다. 리헬과 눈이 마주치자, 포에티는 환하게 웃었다. 눈이 멀 것만 같은 아름다운 존재. 그 광경은 오래도록 리헬의 안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아....문장이 진짜....고자 같아서 내가 눈물이 다 난다.....
사족으로 포에티는 릿신과 더불어 핰후월드 공식 미인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리헬의 눈으로 보는 포에티의 미모도는 한없이 999에 가까운 수치이니 오글거려도 봐줍시다ㄳ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