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계단에 걸터앉은 채 청소하는 사용인들을 그리던 리헬에게 앨번이 다가왔다.
"도련님, 오늘 새벽에 주인님께서 돌아오신다는 기별이 왔습니다."
기대어 앉아 있던 포에티가 고개를 든다. 리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앨번이 돌아간 다음, 리헬은 포에티를 쓰다듬고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오신대, 포에티."
"아버지?"
"응."
포에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버지가 뭐야?"
리헬은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곧 포에티가 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웃으며 다시 말했다.
"아빠 말이야."
"아빠?"
포에티의 표정이 묘했다. 그녀는 정말로 처음 듣는 단어를 발음하듯이 발음하고 있었다. 리헬은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냐, 아무 것도 아냐."
리헬에게 있어 부친이 돌아온다는 소식은 다른 것을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영향력이 큰 것이었다. 그는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잠도 거의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벽이 되어 마차가 들어온다 짐을 내린다 부산스러워질 무렵에서야 까무룩 선잠이 들었다가 앨번에 의해 깨워져 현관으로 나왔다. 노윈의 무뚝뚝한 옆얼굴이 보였다.
"돌아오셨어요."
"그래."
어쩐지 눈앞이 흐리다. 몇 차례 힘주어 눈을 깜빡이는 사이 노윈이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들어 불쑥 내밀었다.
"선물이다."
한눈에도 커다란 봉투였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책이 들어 있었다. 리헬은 형식적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누가 와 있느냐?"
힐금 보니 포에티의 방에 여태 불이 켜져 있었다. 리헬은 허둥대며 둘러대었다.
"아, 저, 제 모델이..."
"피곤하니 쉬겠다. 너도 들어가봐라."
리헬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자신을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현관을 통과해가는 아버지의 등을 맥없이 올려다보았다.
방으로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니 나온 것은 경제학 서적이었다. 리헬은 헛웃음을 지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엄마. 신음하듯 중얼거리다, 문득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어보니 찾아온 것은 앨번이었다.
"잠을 못 이루신 것 같기에 와 봤습니다."
누가 가족인지 모르겠군, 생각하니 고마우면서도 입맛이 쓰다. 앨번이 타 온 차를 마시며, 리헬은 한동안 가만히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앨번은 언제나처럼 지시를 기다리듯 차분한 얼굴로 문가에 서 있다. 앨번은 리헬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저택에서 일해오던 사용인이었다. 아직 리헬이 소년이고 앨번은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있던 즈음부터, 그는 집사로서 리헬과 노윈에게 헌신했다. 그가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았을 때, 노윈은 기꺼이 입회인과 후견인이 되어 주었다. 어머니도 형제도 없는 리헬에게, 앨번은 가족처럼 그림자처럼 곁을 지키는 존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그가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만 실감이 날 뿐이다.
"앨번."
"예, 도련님."
"차를 한 잔 더 부탁해."
"예, 그러겠습니다."
리헬은 침울히 고개를 흔들어 저었다. 혼자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 포에티와 단 둘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생각하며, 앨번이 돌아올 때까지 홀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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