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뒤, 도시의 한켠의 불법 노예시장에 히즈넨 저택의 집사가 은밀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돈이 얼마가 들건 상관하지 않고 주로 통통한 여자를 사들였다. 대체로 일이주 간격이었고, 그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히즈넨 가의 외아들 몫의 재산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앨번은 노예를 사들여 약으로 정신을 잃게 하고는, 히즈넨 가의 손님으로 있는 금발의 소녀를 들여보냈다. 조심스레 문 바깥에 서 있던 리헬 히즈넨은, 안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효과음에 몇 번씩이나 정원으로 뛰쳐나가 토악질을 했다. 포식를 마친 소녀에게로 돌아가면 피투성이 바닥에 인간이었던 신체의 일부와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사방에 진동하는 역한 냄새와 피와 고깃조각을 처리하는 것은 집사 앨번의 몫이었다. 그는 안경에 튄 피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문질러 닦았다.
재산이 바닥나자 이번에는 애지중지하던 그림들을 처분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림들마저 바닥이 나자 리헬은 울며 앨번에게 매달렸다.
"부탁할게, 제발, 앨번. 돌아가신 어머니를 봐서라도 도와줘, 제발."
리헬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재능이 없다. 십 년이 걸린다 해도 아마추어전에조차 걸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포에티만 있어준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자신으로서는 화폭에 옮기는 것도 역부족인 아름다움이지만, 그렇다해도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어떻게든 만족할 것 같았다. 그녀만 있다면.
다음날부터 도시의 묘지에는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혈기방장한 소년들이 유령의 정체를 확인하려 찾아들었다가는 실종되었다. 새벽,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 앨번은 문득 아내의 화장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그는 리헬에게 이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삼십여 년간 묵묵히 저택을 위해 살아온 남자는 그러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는 리헬 히즈넨에게 생명을 빚지고 있었다. 그는 굶주린 떠돌이 소년을 거두어 준 크리스티 히즈넨의 뱃속에 있던 것이 리헬임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낳을 아이의 그림자를 원했다. 손에 남은 핏자국을 문질러 지우는 앨번의 뒷모습을 안나의 눈이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날. 자네리에 의해 십여 년을 늦춰진 날이 왔다. 포에티의 정체가 저택 사람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발견한 것은 어린 유하스였다. 앨번 부부의 아기 클로디아를 보는 것이 주된 일인 그녀는, 그날따라 유난히도 심한 편두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채다 누군가의 울음 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꼭 구토하는 소리처럼도 들리던 그것의 근원지를 찾아 복도를 돌아다니던 그녀는 어떤 방에서 이상한, 마치 푸줏간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가 난다고 생각해 조심스레 문을 열어 보았다. 다음 순간 그녀의 비명소리가 저택을 가득 채웠다.
노윈은 리헬과 앨번이 얽힌 이 일을 조용히 덮으려 했다. 그는 포에티의 처분을 조금 더 고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노윈의 남은 평생을 앨번의 증오 속에서 살게 만든 결정이었다. 창고에 갇힌 포에티를 가엾게 여긴 안나가 음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숨어든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포에티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물론 포에티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안나가 죽은 지 반나절 만에 창고 문이 열렸다. 고용인들의 선두에 선 것은 앨번이었다.
"안나!"
대답은 없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어둠 속에서 날선 금빛 눈동자가 빛나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앨번의 손이 반사적으로 격철을 당겼다. 무엇인가 구석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사람의 손. 꽉 쥐여진 손이 덩그라니 떨어져 있었다. 앨번은 권총을 쥔 채로 안경을 밀어올렸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그곳에는 너덜너덜해진 안나의 몸이 있었다.
앨번은 비명을 질렀다. 그는 미친듯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왼쪽 발목에 데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포에티가 웅크린 채 웃고 있었다. 가슴과 머리에 총을 맞고서도, 그녀는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해맑게 웃었다. 앨번은 절뚝거리며 물러났다. 우르르 달려든 사용인들이 포에티를 붙잡아 누르는 동안, 그는 가다듬어지지 못한 호흡으로 한때 안나였던 시체를 보았다. 앨번은 멍하니 안나의 손을 펼쳐 보았다. 피 묻은 조그마한 호박 귀걸이. 그는 현실감을 잃고 뒤를 돌아보았다. 포에티의 귓가 한쪽이 찢어져 있었다. 귀걸이 한 짝을 손에 쥔 채, 바르톨 앨번은 그 자리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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